형제. 자매의 인연은 700 생의 인연
형제. 자매 간의 인연은 부모자식 간의 600 생의 인연보다 한술 더 떠 700 생의 인연이라고 합니다. 700생을 서로 경쟁하며 부닥쳐 온 인연이 있어야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된다고 것입니다. 형제간에는 서로 간택을 해서는 안 되고, 형제간에는 네 것과 내 것이 존재해서는 안 된며 모두가 우리 것이어야 합니다.
옛날 형제간에 사촌 간에 육촌 간에 10촌이 넘는 집안사람들이 산 하나를 두고 모두가 우리 산으로 명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유권이야 누구한테 있든 조상이 남긴 땅이라면 네 소유, 내 소유 안가리고 모두가 우리 것인 것입니다. 그래야 우애가 생깁니다. 또 다른 간택은 형제간에는 간택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형님이 하는 일이라서 무조건 잘한 일이라고 편을 들면 안 되고, 내 동생이 한 일이라서 무조건 옳은 일이라고 도와주면 안 됩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선과 악을 구별하여 도와줄 것은 도우고 말릴 일은 말려야 된다는 뜻입니다.
시골의 어느 마을에 5 형제가 있었습니다.
5형제가 모두 무사히 병역의무를 마치고 제대를 한 후, 귀향해서 다른 집들과 품앗이를 할 필요 없이 형제끼리 서로 협조하며 우애를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형제들은 밤과 낮이 없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그들 5형제들은 들판을 가꾸어 더 많은 논밭을 장만하고 부자로 살아갔습니다. 그들 형제는 남들과 싸울 일도 없었지만 다툼이 발생하면 다른 형제들이 싸움을 말리고 일단은 자기형제를 나무라고 자초지종을 알아본 후, 편들어 도울 것은 도우고 사과할 것은 사과했습니다. 형제들이 개입된 다툼이라도 도우고 사과하는 처리하는 결과가 분명한지라 동네 어른들의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폭력성이 소문난 삼형제가 있었습니다.
이들 형제의 싸움은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 없었습니다. 삼 형제 중 한 사람의 싸움은 세 사람의 공동 싸움이었습니다. 공동의 적을 향해 삼형제가 합심하여 달려들어 싸우는 것입니다. 이들 삼 형제 앞에서는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었고 그들은 무법자들이라서 온 동네 사람들은 삼 형제를 피해 다녔습니다. 교도소를 제집처럼 교대로 들락거리며 삼 형제는 범죄자가 되어갔습니다.
온 동네를 지배할 것 같은 삼형제는 끝내 마을에서 사라졌습니다. 삼 형제가 서로 간의 행동을 간택하여 이끌어 주지를 못하고 무조건 편들고 도와왔기 때문에 모두가 몰락하고 만 것입니다. 형제간에는 서로의 간택으로 이끌어 주는 것을 중요합니다. 이것을 불교적 용어로는 택법각분이라고 하는데 제대로 된 간택을 하려면 정진이 필요로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있어 필요한 도리를 배우고 익혀가는 것입니다.
형제간에 바른 삶을 위하여 서로가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옛날 형제가 많던 시절 형은 동생들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배움이 부족한 부모들이 피땀 흘려 농사지어 큰아들 하나만 공부시키고 잘 키워 놓으면 그 형이 부모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공부시키고 이끌어 주었습니다. 형제간에는 서로가 나쁜 길로 빠져들지 않고 올바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고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형제간의 도리이자 의무인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정진각분이라고 합니다.
형제간에 제대로 된 정진각분을 이루어 내려면 형제간에 서로 축하하고 격려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로 합니다. 옛말에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 했는데 요즘은 사촌이 아니라 친형제가 잘 되는 것을 봐도도 배 아파합니다. 형이 잘되면 동생이 질투하고 동생이 잘되면 형이 시기하는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돈 많은 재벌들도 형제간에도 재산다툼을 하고, 많이 배운 지식인 박사 석사들도 형제간에 소송하고 원수 맺습니다. 심지어는 형제간에 살인까지 저지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모두가 절대적 형제가 아니라 상대적 형제관계로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형제간에는 서로가 서로를 선한 마음으로 대하고 서로를 축하할 줄 알고 서로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희각분이라고 합니다. 이 희각분은 마음이 선법을 얻어야 구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의 선법은 나의 욕망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나라는 집착 내것이라는 욕망에 사로잡히면 희각분은 멀어집니다. 형제 사이에는 나와 내 것이라는 집착과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의좋은 형제가 길을 가다가 아주 값나가는 금덩어리를 하나 주웠습니다.
“형님 우리 형제의 우애에 감동한 부처님이 주신 보물인가 봅니다. 이제 우리 형제는 돈 걱정 없이 편히 살 수 있겠습니다." 기쁨에 들뜬 목소리로 동생이 형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이제 우리 형제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게 되었구나!" 형님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뿐, 그 후 형제는 말이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갈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님만 없었다면 저 금덩어리는 모두가 내 것인데!"
“아우만 없었다면 저 금덩어리는 모두가 내 것인데!"
형제는 강을 건너기 위해 배에 올라서도 줄곧 말없이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형님만 없다면! 아우만 없다면!으로 시작된 갈등이 형님만 없애면! 아우만 없애면!으로 이어지는 순간, 형은 품 안에서 금덩어리를 꺼내 강물 속으로 풍덩하고 던져버렸습니다.
"형님!" "아우야!"
금덩어리가 물속으로 풍덩하는 순간 두 형제는 서로 부둥켜안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찮은 금덩어리 때문에 형제는 서로가 형제를 죽이려는 끔찍한 생각마저 일으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형님이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져버리는 순간 형제는 갈등에서 벗어나 형제간의 우애를 더욱 깊게 다질 수가 있은 것입니다.
형제간의 욕망을 버릴 수 있는 여유 있는 사심을 불교에서는 여각분이라고 합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야 형제간에도 서로가 축하하고 격려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과 번뇌를 끊어버리고 진실되고 거짓됨을 능히 알아서 올바른 선근을 쌓아가는 것을 여각이라 말합니다.
위의 의좋은 형제처럼 물질을 비롯한 집착과 욕망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만, 거짓되고 참되지 못한 번뇌 망상과 탐, 진, 치 삼독심에서 생겨나는 형제간의 갈등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형제간에는 내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하고, 내 것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지혜를 불교에서는 사각분이라고 합니다.
나의 모든 욕망을 다 포기하고 버리고 나면 마침내 마음의 흔들림에서 벗어나 형제간의 도리를 지켜낼 수 있고 형제간에 갈등을 일으키는 일체 번뇌 망상을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온갖 유혹에 빠져들지 않고 내 형제 내 자매를 바로 볼 수 있는 때, 묻지 않은 고요한 정심이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정각분 입니다.
부모를 같이 한 내 형제 내 자매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우주법계의 일체중생이 모두 나의 형제자매인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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