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을 배우는 것은 내세를 위한 수행입니다.
불교를 배우고 수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 생에서 큰 방향의 운명을 바꾸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불법을 배우고 수행하는 것은 내세를 위한 수행입니다.
오늘 오랫만에 《지장경》을 읽고 느낀 점이 있습니다. 지장경에서 광목녀의 이야기를 읽다가, 그녀가 살아생전에 악업을 많이 지은 어머니를 위해 큰 서원을 세우고 선업을 쌓았음에도, 이번 생에서의 광목은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13세의 단명한 운명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녀의 어머니는 광목의 공덕과 선업으로 인해 다음 생에 천세의 장수를 누리며 바라문으로 태어나고, 그 다음 생에는 불국토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수행은 마치 사람이 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방황하며 길을 헤매고, 어떤 사람은 방향을 알고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그들은 각자의 길에서 규칙을 잘 지키느냐에 따라 다음에 걸어야 할 길이 정해집니다.
인생의 각 단계는 마치 사거리에서 길을 선택하는 것과 같고, 한 번 선택한 길은 되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작은 변화를 할 수는 있지만 길을 되돌아가거나 큰 변화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사거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길을 바꿀 기회가 생깁니다.
사람은 태어나기 전이나 사망할 때가 운명을 바꾸기 가장 좋은 시기라고 불교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한 번 태어나면 업보를 받는 과정이 시작되기 때문에 큰 변화를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이번 생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규칙을 잘 지키고, 신호를 어기지 않으며, 함부로 차선을 바꾸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수행을 통해 다음 사거리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 도착 지점에서 해탈하는 것이 바른 이치입니다.
이번 생에서의 재물이나 애정과 같은 과보는 빠르게 지나가며, 흔적 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구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내세의 해탈을 위한 과보를 얻는 것이야말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이는 자신의 노력에 의해 작은 변화만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다 큰 성인이 노력한다고 해서 키가 160cm에서 180cm로 갑자기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강한 선업이나 악업을 짓지 않는 한, 대부분은 작은 수리와 보완에 불과합니다. 또한 내세(다음생)의 복을 기다린다는 것도 궁극적인 목표는 아닙니다. 내세에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해탈하는 것이 영원한 목표여야 합니다.
이번 생은 이미 성숙한 업보의 결과입니다. 전생에 업을 지었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 과보를 받습니다. 이번 생에 선업을 쌓고 복을 닦아도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생에 그 결과를 알게 될 것입니다.
"전생을 알고 싶으면, 현생을 보고, 내생을 알고 싶으면 현생을 보라"는 말이 있듯이 생애 전체가 자신의 업력에 의해 좌우됩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과거를 바꿀 수 없듯이 이번 생을 바꾸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번 생의 업이 이미 성숙하였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경전에 나오는 공덕을 살펴보면, 대부분 내생(다음생)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이번 생에 여성이 수행을 통해 남성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수행을 해도 여성이 남성으로 바뀌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전생의 과보로 인해 육체가 이미 성숙하였기 때문입니다.
유식학의 교리로 볼 때,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 큰 결심을 내리고 강한 선업을 창조한 경우입니다. 이 선업이 과보를 얻기 전에 먼저 꽃을 피우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본래 내생에 얻을 과보가 이번 생에 선업의 힘이 너무 강해 일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특별한 경우이며, 대부분의 경우 과보는 내생(다음생)에 나타납니다.
둘째, 전생에 나쁜 업을 지었지만 그 업이 가벼운 경우, 수행을 통해 운명을 전환하기 쉽습니다. 수행의 노력은 업의 경중에 따라 달라지며, 업이 무거운 사람은 쉽게 바꾸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죄업을 짓고 바로 참회하면 그 과보가 약해져 쉽게 전환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수행자가 똑같은 경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수행을 하며 선업을 쌓아도, 누구는 불과 몇개월만에 혹은 몇년안에 진은복을 받을 수 있지만, 누구는 평생 수행을 해도 복을 얻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전생의 업의 경중에 의한 결과 입니다. 그러나 오랜 수행을 하며 선업을 쌓아도 복을 얻지 못한 사람은 다음생에 반드시 그 가피를 받을 수 있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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