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교수행.공부

청화스님의 수행, 법문, 그리고 업적

by 게으른수행자 2024. 8. 25.
반응형

청화스님의 수행, 법문, 그리고 업적

청화(靑華) 스님은 현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고승으로, 스님이 남긴 생애와 수행, 법문, 그리고 업적은 한국 불교의 발전과 대중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청화 스님은 평생을 오롯이 불교 수행과 전파에 바쳤으며,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불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장좌불와중인 청화스님

생애

1923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스님은 1947년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한 뒤,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국내에 들어와 1급 교사 자격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장성 운문암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은사 금타 스님을 만나 출가했습니다.

 

출가 후, 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스님은 그때부터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40여년간 대흥사 진불암, 상원암, 남미륵암, 월출산 상견성암, 백장암, 벽송사, 칠장사 등에서 묵언과 장좌불와를 원칙으로 치열한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60세가 넘어서야 토굴 생활을 마친 스님은 1985~1995년 곡성 태안사에 주석하며 대중들과 함께 ‘3년 결사 용맹정진’을 감행했습니다.

 

청화 스님은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 등에서 수행하면서 한국 불교의 전통적인 수행법을 몸소 실천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선지식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불교적 견해를 확립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청화 스님은 송광사의 승가대학에서 불교 경전을 깊이 공부했으며, 그곳에서의 경험이 청화 스님의 불교적 철학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청화 스님은 불교 경전뿐만 아니라 선(禪) 수행에도 몰두하여,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깨달음을 추구했습니다. 청화 스님은 수행을 통해 불교의 본질을 깨닫고자 했으며, 이러한 노력은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지속되었습니다.

수행 방법

청화 스님의 수행 방법은 전통적인 선 수행에 기초하고 있으며, 청화 스님은 일생 동안 꾸준히 정진하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청화 스님은 선 수행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고, 마음의 본성을 깨닫고자 했습니다. 청화 스님은 특히 선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수행을 이어갔습니다.

 

1.선 수행(禪 修行)

청화 스님은 선 수행을 통해 마음의 본성을 깨닫고자 했습니다. 청화 스님은 “선은 마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자주 강조했으며, 마음의 본성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탈의 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청화 스님은 선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화두’를 들고 끊임없이 그것을 참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청화 스님은 화두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청화 스님은 또한, 선 수행에서 중요한 것은 꾸준한 정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스님은 수행은 단기간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노력해야만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스님은 매일같이 정해진 시간에 수행에 임하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꾸준한 정진은 법문에서도 자주 언급되며, 많은 제자들에게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2. 경전 공부

청화 스님은 선 수행 외에도 경전 공부를 중시했습니다. 청화 스님은 불교 경전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수행을 더욱 깊이 있게 다듬어 나갔습니다. 스님은 특히 《금강경》, 《반야심경》, 그리고 《법화경》과 같은 주요 불교 경전을 철저히 공부했으며, 이를 통해 불교 교리에 대한 깊은 이해를 쌓았습니다.

 

청화 스님은 경전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을 단순히 머리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실제 수행과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는 경전의 가르침을 실천함으로써 불교의 진리를 체득하고자 했으며, 이러한 실천적 접근은 청화 스님의 수행 방법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였습니다.

법문

청화 스님의 법문은 깊은 통찰과 명쾌한 설명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청화 스님은 불교의 근본 교리와 수행 방법에 대해 깊이 있는 설명을 제공했으며, 이를 통해 많은 이들이 불교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청화 스님의 법문은 단순히 이론적인 설명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 지침을 제공함으로써 청중이 자신의 삶에 불교적 가르침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1. 깨달음과 수행의 중요성

청화 스님의 법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주제 중 하나는 깨달음과 수행의 중요성입니다.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 불교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으며, 이를 위해 꾸준한 정진이 필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청화 스님은 특히 “수행은 마음의 때를 씻어내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수행을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본래의 청정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2. 무아(無我)와 공(空)의 가르침

청화 스님은 불교의 근본 교리인 무아(無我)와 공(空)의 개념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화하며, 고정된 자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청화 스님은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특히 청화 스님은 공(空)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불교 수행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으며, 이를 통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태에 이를 수 있다고 설파했습니다.

 

3. 자비(慈悲)의 실천

청화 스님은 자비의 실천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자비심을 통해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돕는 것이야말로 불교적 삶의 본질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스님은 법문을 통해 자비심을 키우는 방법과 이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으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자비심을 바탕으로 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했습니다.

업적

청화 스님은 생애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이는 한국 불교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청화 스님은 해외포교를 위해 1992년 미국 캘리포니아 카멜에 삼보사와 금강선원을 건립하셨습니다.

 

1. 수행과 가르침

청화 스님은 염불선의 대중화를 시도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특히 스님은 “우주만유는 진여불성뿐이고 마음이 곧 부처라는 반야의 지혜를 여의지 않고 수행한다면 모든 수행법이 선이 될 수 있다”며 간화선뿐 아니라 염불선, 묵조선 등 다양한 수행법과의 회통과 공존을 강조했습니다.

 

이로 인해 간화선만을 유일한 수행법으로 여기던 조계종에서 한때 외도로 치부돼 비판과 핍박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스님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염불선의 대중화를 위해 매진했습니다. 그 결과 스님이 입적한 이후 조계종은 사미와 행자들에게 염불의례교육을 시행하고, 승가고시에 반영했을 뿐 아니라 염불원 수행도 안거로 인정하는 등의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2. 사찰 운영

청화 스님은 여러 사찰에서 주지로 활동하며 사찰 운영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사찰을 불교 교육과 수행의 중심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를 통해 많은 불자들이 불교를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스님은 특히 사찰을 단순한 수행 공간이 아닌, 지역 사회와 불교 대중화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힘썼습니다.

 

3. 저술 활동

청화 스님은 다양한 저술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널리 알렸습니다. 청화 스님의 저서들은 불교 교리와 수행 방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것으로, 많은 불자들에게 중요한 학습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청화 스님의 저술은 법문과 마찬가지로 실천적 지침을 제공하며, 독자들이 불교를 삶 속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안내합니다.

 

4. 사회적 활동

청화 스님은 불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적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불교의 자비와 지혜를 실천하여 사회의 고통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불교의 가르침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청화 스님은 특히 소외된 이웃을 돕는 데 앞장섰으며, 이를 통해 불교의 자비심이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실천해야 할 가치임을 강조했습니다.

청화스님의 마지막날

2003년 11월12일 저녁, 곡성 성륜사 조선당에 주석하던 청화 스님이 시자 중원을 조용히 불렀습니다. 스님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나에게 의복을 좀 갖춰주소.” 몇 달 전부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어도 평생 지켜왔던 장좌불와(長坐不臥)와 일종식을 놓치지 않았던 스님이었습니다. 그날 낮에도 평소처럼 상좌들과 차담을 나누는 등 스님은 특이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가쁜 숨 속에서 곧 세연이 다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상좌들이 조선당에 몰려들었습니다.

 

상좌 도일 스님은 스승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큰스님, 가시렵니까?” “나, 갈라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의연함을 놓치지 않았던 청화스님은 곧 깊은숨을 몰아쉬면서 상좌들을 향해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대중과 화합 잘하고 살아가시게, 승가란 화합이네.”
이 말을 끝으로 청화 스님은 상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굿모닝아시아에서 만나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