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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한국 불교 천태종의 역사

by 게으른수행자 2025.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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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 천태종의 역사

한국 불교에서 천태종은 고려 시대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독자적인 종파로 개창되었으며, 이후 명맥이 끊어졌다가 현대에 상월원각대조사에 의해 재건되었습니다. 교리와 수행의 조화를 강조하는 천태종은 한국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천태종 구인사

1. 고려 시대 천태종의 개창과 발전

천태 교학의 전래

한국에 천태 교학이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부터였습니다. 중국 천태종의 개조인 지의 대사의 가르침이 일찍이 신라에 소개되어 화엄종이나 법상종과 함께 연구되었지만, 독자적인 종파로 성립되지는 못했습니다.


대각국사 의천의 창종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의천(義天, 1055~1101)은 해동 천태종을 개창한 인물입니다. 그는 화엄종을 중심으로 불교를 공부했으나, 당시 교종과 선종으로 양분되어 대립하던 불교계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통합할 사상적 기반을 찾고자 했습니다.

 

송나라 유학

1085년(고려 선종 2년) 송나라에 유학하여 불교 여러 종파의 교학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특히 천태종의 사상에 심취하여 지의 대사의 15대손인 유성(有誠) 등에게서 천태 교학을 전수받았습니다.


국청사 창건과 천태종 개창

1097년(고려 숙종 2년) 귀국 후, 숙종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개경에 국청사(國淸寺)를 창건하고 이를 본산으로 삼아 천태종을 개창했습니다. 의천은 교관겸수, 즉 교리 공부와 수행을 함께 닦아야 한다는 천태종의 가르침을 내세워 선종과 교종의 대립을 해소하고 불교계 통합을 시도했습니다.


신편제종교장총록 간행

의천은 송, 요, 일본 등지에서 불교 경전을 수집하여 속장경(續藏經)을 편찬함으로써 당시의 불교 교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고려 천태종의 성격

의천의 천태종은 주로 귀족과 왕실을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교관겸수를 통해 이론과 실천을 아우르려 했습니다. 그러나 의천 사후 제자들 간의 갈등과 무신정변 등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천태종의 명맥이 거의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2. 현대 천태종의 재건과 발전

상월원각대조사의 출현과 재건

천태종의 명맥은 약 500년 가까이 끊겼다가, 1945년 해방 이후 상월원각대조사(上月圓覺大祖師, 속명 박준동, 1911~1974)에 의해 다시 꽃피우게 됩니다.

 

홀로 수행과 종단 재건 발원

상월원각대조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혈혈단신으로 불법을 구하고 수행에 전념하며, 한국 불교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큰 원을 세웠습니다.

 

구인사 창건

1966년 충청북도 단양에 구인사(救仁寺)를 창건하고, 이곳을 총본산으로 삼아 천태종을 재건했습니다. 그는 법화경의 일불승 사상을 바탕으로 생활 불교, 애국 불교, 대중 불교를 지향하며 불교가 현실 생활과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관음정진의 대중화

상월원각대조사는 일반 대중도 쉽게 수행할 수 있는 방법으로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는 관음정진을 널리 보급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대한불교천태종의 핵심 수행법 중 하나입니다.


현대 천태종의 특징

대중 불교 지향

출가자와 재가자가 함께 수행하며, 불교가 일부 지식인이나 승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자립적인 교단 운영

승려의 개인 소유를 금지하고, 모든 재산을 종단 소유로 함으로써 투명하고 자립적인 교단 운영을 지향합니다.


애국 불교

나라의 안녕과 국민의 평화를 위한 애국 불교를 강조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하려는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현재 대한불교천태종은 단양 구인사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 많은 사찰과 포교당을 두고 있으며, 왕성한 신도 조직을 바탕으로 한국 불교의 주요 종단 중 하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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