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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수행.공부

한국 불교는 어떠한 역사를 거쳐서 왔을까?

by 게으른수행자 2024.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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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는 어떠한 역사를 거쳐서 왔을까?

한국불교는 약 1,700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종교적 흐름과 외부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성격을 형성했습니다. 그 역사와 유래를 상세히 설명하기 위해 시대별로 나눠 살펴보겠습니다.

속리산 법주사

1. 한국불교의 도입과 삼국시대의 불교

불교는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반 사이에 한반도에 전래되었으며, 이는 한반도의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 각각에서 독립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초기 과정은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고구려

고구려는 한반도에서 불교가 최초로 도입된 국가입니다.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2년) 때, 진나라의 승려 순도아도가 불교를 전해 왔으며, 소수림왕은 불교를 국교로 삼았습니다. 이어서 375년에는 아도화상이 고구려에 들어와 불교의 교리를 널리 퍼뜨렸습니다. 고구려는 왕실이 불교를 후원하며 사원을 건립하고 불교를 통해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려 했습니다. 불교는 고구려의 사상과 철학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불교 예술과 건축이 발달했습니다. 대표적인 고구려 불교 유물로는 평양의 안악사와 수도 승격 후 건립된 여러 사찰들이 있습니다.

 

백제

백제는 고구려에 이어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384년 백제 침류왕(1년) 때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했습니다. 백제는 불교가 문화와 예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통해 발전한 불교 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백제 불교는 불교 예술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는데, 특히 미륵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부여와 익산 지역에 남아있는 사찰과 불상은 당시 백제 불교의 번영을 보여줍니다. 특히 익산의 미륵사지는 백제 불교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미륵사상과 관련된 중요한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신라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은 시기인 5세기경에 불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신라의 불교 수용은 왕권 강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으며, 특히 법흥왕(14년)에 의해 공식적으로 불교가 공인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신라는 토착 신앙이 강했지만, 불교는 왕권 강화와 귀족 사회의 통합을 위한 수단으로 점차 중요성을 더해갔습니다. 이후 신라의 불교는 화랑도와 같은 전통적인 사상과 결합하여 독특한 신라 불교 문화를 형성하였습니다. 신라의 승려 원효와 의상은 각각 교리적, 실천적 측면에서 한국 불교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특히 원효는 화쟁 사상을 주장하며 불교 교리의 통합을 강조했습니다.

파주 용암사 석불

2. 통일신라 시대의 불교

통일신라 시대(676-935)는 한국 불교사에서 가장 번성한 시기 중 하나로, 불교가 사회 전반에 걸쳐 깊이 뿌리내린 시기입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불교는 국가의 이념적 기반으로 자리 잡았고,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불교는 왕권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승려들은 정치와 사회의 지도자로서 활동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교리적 논쟁과 함께 다양한 불교 종파가 발전하였고, 특히 선종과 교종이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선종은 실천적인 명상과 깨달음을 중시한 반면, 교종은 경전의 연구와 해석을 중시하였습니다. 이 두 흐름은 이후 한국 불교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통일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불교 유물로는 불국사, 석굴암, 다보탑, 석가탑 등이 있으며, 특히 불국사와 석굴암은 당시의 불교적 세계관과 예술적 정수를 보여줍니다. 또한 경주 지역에는 다양한 불교 유적지가 남아 있어 통일신라 불교의 번영을 보여줍니다.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고려시대)

3. 고려 시대의 불교

고려 시대(918-1392)는 신라불교를 그대로 계승하는 한편, 한국 불교가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황금기를 맞이한 시기였습니다. 고려 왕조는 불교를 국가의 이념적 기초로 삼았으며, 왕실과 귀족들은 불교를 후원하며 많은 사찰을 건립하였습니다.

 

태조 왕건은 불교를 국교로 정하고 새로 승과를 제정하여 승려를 우대하였습니다. 연등회, 팔관회 등을 연중행사로 개최하는 등 태조의 숭불정책은 고려 전반에 걸쳐 계승되면서 사상적 지주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건립된 사찰로는 개성의 왕륜사,법왕사를 비롯한 16개의 절과 와 봉은사, 진관사, 부석사, 관음사, 숭교사, 석왕사,영명사 등이 있으며, 공예품으로는 관촉사, 석등, 부석사 조사전벽화, 대흥사의 종 등 우수한 예술품을 낳았습니다.

 

특히 문종(文宗) 연대에는 고려판 팔만대장경을 간행하여 한국불교문화의 대표작을 남겼습니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음에도 이름난 고승은 많이 배출되지 못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체관은 천태종을 재흥시켰고, 대각국사 의천은 문종의 아들로 일찍이 11세 때 승려가 되어 송나라에 유학한 후 교장도감을 설치, 속장경 4,740여 권을 간행한 것은 특기할 만하며, 또 문하생이 1,000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에는 또한 선종과 교종의 통합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눌(知訥)이라는 뛰어난 승려가 등장하였고, 그는 "정혜쌍수"와 "돈오점수"라는 사상을 제창하며 선과 교의 통합을 시도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이후 조선 시대 불교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려 불교의 대표적인 사찰로는 해인사, 송광사, 개태사 등이 있으며, 불교 문화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불화, 불상, 사경, 탑 등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서산대사가 승병을 지휘하는 모습

4. 조선 시대의 불교

조선 시대(1392-1910)에 들어서면서 불교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조선 왕조는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하면서 불교를 억제하였고, 이는 불교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초기에는 불교를 어느 정도 후원했으나, 세종과 세조를 제외한 대부분의 조선 왕조는 불교에 대해 억압적인 정책을 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사원 철폐와 승려의 도성 출입 금지 등 불교 억압 정책이 시행되었으며, 승려들의 사회적 지위도 크게 떨어졌습니다. 함부로 승려가 되는 것을 금하고 사전(寺田)에도 과세를 부과하였으며, 승려의 궁중출입과 도성 내 출입을 금하였습니다. 또한 연산군 때는 승과를 폐지하고, 삼각산의 여러 절의 승려를 몰아내어 그곳을 놀이터로 삼았으며 원각사의 불상을 옮기고 그곳을 기생들이 거주하는 기관으로 삼는가 하면, 선종의 본산인 흥덕사, 흥천사 두 절을 없애고 여승은 궁중의 노비로 삼고 승려들도 모두 환속시켰습니다.

 

중종은 경주의 동불상을 녹여 병기를 만들고 원각사를 헐어 그 재목은 민가를 짓는 데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압에도 불구하고 불교신앙 자체를 말살하지는 못하였으며, 특히 상류층 부인의 신앙을 저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 시기 불교는 산중 불교로 전환되었으며, 사찰은 산속에 위치하게 되어 국가 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연기설(緣起說)과 선종이 결합된 불교 철학이 발전하였고, 많은 승려들이 이러한 철학적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불교는 다시 조금씩 부흥하기 시작했습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승려들이 의병 활동에 참여하며 불교는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이름 높은 명승도 많이 배출되어 무학, 함허, 보우 등과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 서산, 사명, 처영, 영규등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불교의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운문사 스님들

5. 근대와 현대의 한국불교

근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불교는 서양 문물의 유입과 일본 제국주의의 영향 속에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20세기 초, 일본의 강점기에 불교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협력한 측면도 있었으나, 동시에 독립운동을 전개한 승려들도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 불교는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으며, 현대 한국 불교는 대중화와 함께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6 ·25전쟁 후에는 파괴된 100여 개의 사찰을 수축하는 한편 불교의 대중화운동을 전개하였고, 고아원의 설립, 동국대학, 해인대학, 경기대학과 10여 고등학교 및 20여 개의 중학교를 운영, 문화사업에도 기여하였습니다.

 

1954년 이래 비구, 대처 두 파의 분쟁으로 분열된 후 여러 개의 종단으로 갈라졌습니다. 현재 교육부에 등록된 종파는 조계종을 비롯하여 태고종, 법화종, 미륵종, 법상종, 보문종, 일승종, 용화종, 불입종, 원효종, 천태종, 화엄종, 정토종, 진각종,  ·총화종, 진언종, 천화불교, 한국불교법화종 등 18개 종파가 있습니다.

사찰의 스님들

현재 한국의 사찰수는 약 5,700여 개소이며, 승려가 2만여 명, 신도수 1,300만여 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불교신문을 비롯하여 각 종파 단체들에서 정기간행물도 30여 종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20세기 중반에는 불교계 내부에서의 종파 정비와 새로운 교단의 형성이 이루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조계종이 현대 한국 불교의 중심 종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불교는 다양한 사회적, 철학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21세기에는 생태계 문제, 사회적 갈등 해결, 인간의 정신적 성장 등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는 여전히 명상, 참선, 교리 연구 등을 중시하면서도,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국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역사, 문화, 철학에 깊이 뿌리내린 중요한 종교적 전통입니다. 각 시대마다 불교는 그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필요에 맞게 변모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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