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찰에서 불교 수행 중 경험했던 마장 이야기
불교 수행 중 '마장'이란, 수행자의 깨달음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의미합니다. 마장은 내면의 번뇌, 외부의 유혹, 또는 주변인의 방해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장을 극복하는 것은 수행의 중요한 부분이며, 이를 통해 더 깊은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기도수행 중 마장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수행자라면 누구에게나 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기 전에 마장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불자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마장이 온다는 것은 그만큼 영적인 내적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좋은 현상입니다. 나 역시 수행을 할 때 정말 많은 마장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마장은 사람에 따라 또 환경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내가 경험했던 마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내가 불교와 인연이 되어 불교에 막 입문했을 때, 나는 몸으로 직접 불교를 체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 당시 불교에 입문한 지 일주일도 안된 상태라 불심도 거의 없었고, 불교에 대해 아는 것도 없었습니다. 내 목적은 사찰에 들어가 단순하게 생활하면서 수행이라는 것을 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사찰에 들어가기 전에 어떤 수행을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내가 불자이기 전에 스님과 인연이 되었을 때, 스님이 나에게 절을 많이 하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몸으로 하는 절수행을 하기로 결심하고 불자였던 여동생을 통해 삼천 부처님 명호집을 구한 뒤, 다음날 바로 사찰에 들어갔습니다.
사찰에 들어간 후, 다음날부터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4시에 법당에 들어가 3천 부처님의 명호를 한 분 한 분 읽으며 1000배 절수행을 시작했습니다. 1000배 절수행을 하게 된 이유는 작정하고 사찰에 들어간 만큼 육체적인 고통을 감내하며 수행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절수행 1000배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이 걸립니다.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절을 한다는 건 정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든 수행입니다. 108배도 안 해 본 내가 갑자기 1000배를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 중간중간 쉬기도 많이 쉬었고 처음에는 1000배를 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정도 절수행을 하는데 포기하고 싶을 만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일주일동안 악착같이 해온 게 너무 아까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무조건하자는 마음으로 계속하다 보니 하산할 때까지 10개월 동안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1000배 절수행을 하던 중에 나에게 첫 번째 마장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제가 갔던 사찰은 인연에 따라가게 됐지만 정통사찰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사찰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일하던 사찰은 납골당을 운영하는 사찰이라 규모도 컸고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사찰 규모가 크다 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10명 정도 되었습니다.
사찰일을 하며 절수행을 하던 중 나에게 3번의 마장이 찾아왔는데 3번 모두 함께 일하는 사람들로 부터 왔습니다. 그 마장의 형태는 황당한 형태로 찾아왔습니다.
나도 그때 처음 알았는데, 사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불자들이지만 그중에는 불자가 아닌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내가 일하던 사찰에는 10명이 함께 일했는데 그중에 2명은 불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마장을 불러일으킨 사람이 바로 불자가 아닌 그 두 사람이었고, 다른 한 명은 나이 60대 초반의 불자였는데 좀 교묘하게 나를 괴롭혔습니다.
첫 번째 마장은 이렇습니다.
나에게 첫번째 마장을 일으킨 사람은 불자가 아닌 여성분이었는데, 당시 55세의 미혼여성이었습니다. 사찰에는 나보다 몇 개월 늦게 들어왔으며 사찰 종무소에서 일했습니다. 외모는 결혼을 안 해서 그런지 30대 후반으로 보일 정도로 아주 젊어 보였습니다.
그 여성분에게서 풍기는 이미지는 굉장히 차갑고 눈을 이상하게 못 마주칠 정도로 눈매가 상당히 매섭게 느껴지는 그런 여성이었습니다.
어느 날 모두가 공양간에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나와 약간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식사를 하던 그 여성에게 나는 일상적인 말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그 여성이 내 말을 잘못 알아들었는지, 갑자기 돌변하여 밥 먹다 말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나에게 소리를 지르며 무섭게 쏘아붙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에게 한참동안 뭐라하며 쏘아붙였는데, 무슨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함께 식사하던 스님들과 여러 사람들도 너무 놀라 그냥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습니다.
내가 말을 함부로 한 것도 아니고 말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뭐라고 쏘아붙이니깐 나도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탁 막혔습니다.
내가 뭐라도 잘못한 게 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할 텐데 아무 잘못도 없이 일방적으로 나쁜 놈으로 몰리니깐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말 그대로 길 가다가 갑자기 뺨을 제대로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이때 여자가 사납고 무섭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껴봤습니다. 나는 너무 황당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서 온몸이 부르르 떨렸고, 이 여자는 피하는 게 상책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밥을 먹다 말고 그냥 나와버렸습니다.
숙소에 들어와 너무 화가 나 멍하니 정신줄을 놓고 있을 때, 스님이 내 방으로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내가 절수행을 열심히 하다 보니 생기는 마장이라면서 좋게 생각하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스님이 마장이라고 말해주었지만, 당시에 나는 마장이 뭔지도 몰랐고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절수행을 할 때마다 그 여자의 악독한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 나를 괴롭혔습니다. 다른 곳으로 생각을 아무리 바꿔보려고 노력을 해보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 여자의 모습이 더욱 강하게 떠올랐습니다. 말 그대로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온통 그 여자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정도 절을 하고 나니 그 여자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점점 사라졌습니다. 신기한 건 머릿속에서 그 여자의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이후, 일부러 그 여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려 해도 이상하게 잘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그 여성에 대해 잠시 말해보자면,
사찰에서 함께 일하던 종무소 여자분 중에 30대 후반의 정말 착하고 불심 있는 여자분이 한 명 있었습니다. 잘 웃고 인상도 좋고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씨가 착한 여성이었습니다. 그 여성이 결혼만 안 했다면 프러포즈를 하고 싶을 정도로 정말 괜찮은 여성이었습니다.
나에게 첫 마장을 준 50대 여성은 사찰에 들어온 후, 그 30대 후반의 여성과 친구처럼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둘이 팔짱 끼고 절밖으로 마실도 자주 나가고 둘이 산책도 함께 다니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마장을 일으킨 며칠 후에 보니, 그 둘 사이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았고 분위기가 좀 이상했습니다. 둘이 항상 붙어 다녔는데 말도 안 하는 거 같고 함께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법당 안에서 30대 후반의 여성과 마주쳤을때, 둘이 무슨일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 30대후반의 여성은 씽긋 웃으며 "아무 일 없어요~"라고 대답을 했지만, 둘 사이에 확실히 무슨 일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50대 여성분은 떠난다는 말도없이 절을 떠났습니다.
절수행을 하던 중에 그 50대 여성에 대한 악한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고나니 오히려 연민의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이 여성은 얼굴이나 외모도 괜찮았고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결혼을 안 했고 불자도 아니면서 이곳 사찰에까지 오게 되었을까?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그 여성이 50넘게 사는동안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 들었습니다. 그 여성이 나에게 불같이 화를 낸 것은 본심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절에서 함께 지낼 때 서로 악감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50대 여성은 사회에서 생활을 할 때, 정말 많이 힘들었을거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누군가를 사랑하며 결혼을 하고 싶어도 그게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안되었을 것이고, 직장생활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인간관계를 스스로 망치다 보니 사회 속에서 자신이 설 자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회 속에서 설 자리를 잃은 이 여성은 이런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 어디로 가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야 할까?
아마도 자신을 힘들게하는 현실속에서 벗어나 멀리 떠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다가 불자는 아니지만 불교와의 어떤 인연의 끈으로 인해 사찰까지에 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찰생활도 사회의 일부분이고 여러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이곳에는 참 좋은 분들과 좋은 스님들도 계셨지만, 결국 이곳에서도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인간관계를 망치고 3개월 정도 근무한 뒤 떠났습니다.
불자들은 자신의 고민이나 힘든 부분들이 있다면 기도를하거나 스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지만, 불자가 아닌 사람들은 사찰에 부처님도 많이 계시고 스님들도 계시지만, 스님들게 조언을 구하거나 부처님께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무명에 가려 눈앞에 좋은 길이 있는데도 그걸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내가 가는길이 인연이 아닌것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것은 인연법과 연기법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여성은 비록 불자는 아니지만, 사찰까지 왔다는 것은 불교와 인연이 닿아 있기 때문에 어떤 끌림에 의해 찾아온 것입니다. 단지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불심을 깊게 받아들이고 수행자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모르지만, 불교를 만나 남은 여생을 마음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